vol.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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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블록스는 이런 시대에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게임 플랫폼입니다. 여러 종류 게임을 모아 놓은 앱이라고 해야 하나요? 앱을 실행시키면, 그 안에서 롤플레잉이나 생존, 총싸움, 시뮬레이션 같은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몇 개나 있냐고요? 음, 대략 4,000만 개 정도 됩니다. 인기 있는 게임은 몇십 개 정도지만요. 생긴 건 마인크래프트를 닮았지만, 마인크래프트보다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21세기 초반에 이런 게임 스타일이 유행해서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베타 서비스는 2004년에 시작했고, 정식 서비스는 2006년에 출시했습니다. 2019년 8월에는 월간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고요. 지금은 매달 1억 5천만 명 이상이 쓰고 있다고 합니다.
주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데요. 미국에선 9세~12세 어린이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이 앱을 매주 쓰고 있다고 하죠. 매달 사용 시간은 25억 시간에 달합니다. 2020년 세계 기준, 모바일 누적 매출은 약 20억 달러가 넘고, 앱도 3억 4천만 번이나 내려받았습니다. 투자 시장에선 295억 달러 정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받았고, 조만간 기업공개 없이 바로 상장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에서도 인기가 급상승해 2020년 기준 매출 순위 3위에 오르기도 했죠. 와,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한 앱인데요.
왜 우리는 몰랐을까요?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로블록스는 아이들 앱이니까요. 인터넷의 발달이 취향 중심 공동체를 널리 확산시켰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이젠 뭔가에 대해 정보를 얻거나 배우고 싶다면, 관련 동호회에 가입하는 건 기본입니다. 스마트 기기는 관련 동호회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가에 따라 판매량이 바뀔 정도입니다. 이용자의 관심사에 따라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도 달라집니다. 아이들은 뭔가를 만드는 앱을 좋아하고, 어른 중엔 화투나 바둑 같은 앱이 없으면 못 산다-하는 분도 계시죠. 쓰는 앱에 따라 사는 세계가 달라진다고 해야 하나요.
취향은 겉에 잘 드러나지 않으니, 아는 사람은 알아도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앱이 생각보다 정말 많습니다. 게다가 로블록스는 게임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도구, 또는 플랫폼으로 시작했거든요. 요즘이라면 어린이 코딩 공부 프로그램으로 팔았을 겁니다. 어린이용 게임에 관심 있는 사람도 드문데, 아이들을 위한 게임 제작 프로그램이라면 어른들이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게 아이들만 즐기는데도 로블록스는 성장했습니다. 좋은 선순환을 만들어낸 탓입니다.
어떤 선순환을 만들어냈을까요? 이런 겁니다. 만든 게임을 로블록스 서버를 통해 제공하니 게임만 즐기고 싶은 사람도 모이고,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게 하니 게임 제작자도 늘어납니다. 좋은 게임이 있으니 다시 또 게이머가 모입니다. 게임을 하다 보니 만들고 싶어져서 또 개발자가 늘어납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연간 백만 명의 아이들이 로블록스에서 제공하는 게임 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다고 합니다. 현재 등록된 개발자는 2백만 명이 넘으며, 그중 345,000여 명이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회사와 개발자는 수익을 반씩 나누는데요. 개발자 수익은 2020년 기준 약 2억 5천만 달러가 될 거로 예상합니다.
실제로 미국에 사는 앤 슈마커라는 소녀는, 18세에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개발해 2년 동안 약 50만 달러를 벌었다고 합니다.
핵심은 스마트폰이나 PC와 달리, VR 기술을 이용하면 디지털 정보를 직접 보여줄 수 있다는 겁니다. 작업자가 작업을 할 때 매뉴얼을 일일이 참고할 필요 없이, 관련 정보나 점검해야 할 부분이 그냥 눈앞에 보입니다. 주문에 맞게 다품종을 소량 생산할 경우, 필요한 기재 등을 AR 글래스에서 직접 챙겨줄 수 있습니다. 가상의 물건으로 미리 만들어내 검토할 수도 있고, 가상의 상황을 실감 나게 제시해 몸이 반응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현실로 끄집어내기엔 많이 복잡한 일이지만, 가상 공간에선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고 바꾸고 확장할 수 있으니까요. 서로 떨어져서 일을 할 수 있는, 아니 떨어져 일해야 하는 세상에서 이런 특징은 축복입니다.
이쯤에서 하나 고백하자면, 내일이라도 당장 VR 미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썼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VR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콘텐츠인데요. VR 관련 콘텐츠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은 쓰면 되고, 그림은 그리면 되고, 소리는 만들거나 녹음하고, 사진이나 영상은 찍고 편집하면 되지만, VR 콘텐츠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3D 기술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 손대기 쉽지 않죠. 아직 많은 VR 콘텐츠가 VR 카메라로 찍은 360도 영상에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유튜브와 마인크래프트로 디지털 세계에 입문한 사람들이 이제 어른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3D 그래픽은 레고 블록 놀이와 다르지 않죠. 어도비에선 3D 그래픽 재료를 조립하면 바로 AR 콘텐츠가 되는 앱을 선보였고, AR Cut & Paste 라는, 현실에서 사물을 복제해 AR 콘텐츠로 만드는 앱도 나왔습니다. 아직은 기술 특성에 맞춰 산업용으로 더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런 변화가 계속된다면 앞으론 과연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요? 진짜 뉴노멀은 바로 그런 시대를 가리키는 것일텐데 말입니다.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로블록스는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만날 수 없는 친구를 로블록스 안에서 만났거든요. 어린이들은 이전부터 로블록스를 자신들의 놀이 공간이자 대화 공간으로 쓰고 있었고, 아예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이 앱을 메신저로 쓰게 됩니다. 어떤 부모들은 이런 세계를 인정하고 로블록스 안에서 가상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고요. 회사도 발 빠르게 대처합니다. 이렇게 로블록스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걸 보고 친한 사람들끼리 따로 만나 게임, 대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 공개합니다. 게임 개발 교육을 위한 원격 학습 자료와 웨비나를 열기도 했고요.
이쯤이면, 정말 여기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군요.
물론 로블록스 말고도 메타버스로 쓰이는 앱은 많습니다. 포트나이트나 리니지2 같은 온라인 게임도 그렇고, 제페토 같은 아바타 앱도 이젠 대화 공간을 제공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 친구는, 게임 안에서 대학원생들 모아 놓고 회의도 하더군요. 다만 로블록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건, 이 세대의 아이들에게 첫 메타버스가 될 가능성이 커서 그렇습니다. 예전 온라인 게임과 마찬가지로 어떤 아이들은 이곳에서 연애하고, 친구를 만들고, 화나는 일도 겪고, 사기도 당하고 그러겠죠. 어떤 아이들은 여기에서 첫 프로그램을 만들고, 처음 돈을 벌고, 처음 실패도 겪을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아이들의 커리어는 스마트폰에서 시작될 거라는 거죠. 스마트폰에 기반해 살아가는 삶이자, 스마트폰 안에서 경력을 쌓는 삶. 이런 삶은 어떤 삶일까요? 우리는 이 세대를,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로블록스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