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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0

가상현실이 바꾸는
일의 미래
TREND

글. ICT 칼럼니스트 이요훈
전) 한양대 IAB 자문교수,
전) KISTEP 기술영향평가 전문위원

제 친구는 자주 출장을 다닙니다. 전문 엔지니어라, 제품을 사간 업체에서 점검 요청이 오면 직접 찾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자주 간다는 말이죠.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 직종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쉽게 갈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가게 되면 귀국해서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출장 자체를 꺼리게 됐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낼까요? 채팅하다 물어보니, 의외로 괜찮다고 합니다. 화상 회의로도 할 수 있는 걸 알게 되어서, 앞으로도 자주 안 나갈 것 같다고.

어? 화상 회의로 장비 점검을 할 수 있다고? 궁금해서 물어보니, 스마트 글래스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와 카메라가 달린 장비로, 현장 작업자가 그걸 쓰고 있으면, 작업자가 보는 걸 자기도 같이 볼 수 있다고.
자기가 이 부분 검사해야 한다고 표시하면 그게 현장 작업자 눈앞에도 뜬다고.
대화도 가능해서, 같이 얘기하면서 장비 점검을 할 수 있다고. 얘기를 듣다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기입니다.
흔히 AR 글래스라고 부르는, 바로 그 장비였습니다. 음, 이걸 화상 회의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뉴노멀,
가상현실을 호출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 가상 현실 기술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만, 일상적으로 흔히 가상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쓰게 됐기 때문입니다. 포켓몬 고 게임이나, 머리에 쓰는 큼지막한 디스플레이 장치를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ZOOM으로 대표되는 화상 회의, 오프라인 이벤트를 대체한 가상 이벤트와 원격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가상 소통 기술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서 생긴 물리적 공간의 간격을 메꿔, 통신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죠. 2001년 9.11 테러 이후 비행기 탑승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빠르게 발전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직 어색해하는 사람이 꽤 있지만요.

몇몇 사람이 쓰던 기술에서, 많은 이가 쓰는 기술로 바뀌면서, 그동안 적당히 넘어갔던 문제점도 수면 위에 떠 올랐습니다. 간단한 회의나 면접을 할 때는, 다시 말해 잠깐 목적이 확실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일상적 의사소통을 대신하게 되니까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외로움이나 고립된 기분을 느낀다거나, 개인 시간과 업무 시간 구별이 힘들다거나 하는 문제가 발견됐죠.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의사소통하기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다는 겁니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요. 상시 소통을 위해 화상 카메라를 근무 시간 내내 켜두던 회사도 있었는데요. 직원들이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곧 포기한 예도 있습니다.

가상현실 기술은 그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쓰입니다. 2020년 전반기 제품 발표회와 후반기 발표회를 비교하면 금방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전반기에는 기존 오프라인 이벤트를 흉내 내거나, 단순히 기자들 없이 발표회를 중계하는 모습이었다면, 후반기에는 아예 가상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TV 쇼처럼 영상을 만들어 보여줍니다. 온라인으로는 집중하기 힘든 만큼, 감각을 다르게 가져가는 거죠. 이벤트 생중계가 아니라, 광고 영상을 쏜다는 느낌으로. 최근에는 이런 가상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진행할 수 있는 도구나 서비스도 속속 출시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나라의 VR 앨리스

예를 들어, 온라인 이벤트를 끝내주게 보이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하는 웰컴이란 서비스가 있습니다. 생중계되는 영상에 미리 준비한 영상을 함께 보여주거나, 멋진 그래픽을 화면 위에 얹어서 같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걸 가상과 현실이 혼합됐다는 의미로 하이브리드 이벤트라고 부릅니다. 전에는 비용 문제로 대기업들이나 할 수 있었던 이벤트를, 작은 기업도 쉽게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협업 플랫폼 기업 스페이셜과 함께, 새로운 가상 사무실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스페이셜은 코로나19가 유행하자 자사의 서비스를 개인에만 무료로 풀기도 했었는데요. 내년이면 VR 공간에서 동료들과 함께 있는 느낌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1. 1가상현실에서 홀로그램 형태로 협업할 수 있는 ‘스페이셜(Spatial)’ © 스페이셜 홈페이지
  2. 2SK텔레콤에서 선보인 VR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버추얼 밋업(Virtual Meetup)’ © 페이스북 ‘Jump AR’ 채널

이처럼 가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애플이 인수한 VR 스타트업 스페이시스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ZOOM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앱을 출시한 회사입니다. SKT에서 공개한 VR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버추얼 밋업도 비슷합니다. 마치 게임처럼 자신의 아바타로 접속해, 콘퍼런스나 회의, 공연 등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MS에서 협업 서비스 팀즈에 추가한 팀즈 투게더 모드는, 가상으로 팀원들을 함께 모아 보여주는, 왜인지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능입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하셨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가상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해 하이브리드한 현실로 만들어주는 기술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내년, 그리고 내후년의 화상 회의는 올해와 또 다를 테니까요.

가상 현실 기술이 의사소통만 지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무실보다는 현장에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거의 망해가던 VR 기술이(코로나19로 인해 VR 파크 등은 타격을 입긴 했지만) 쓰일 곳을 찾은 장소가 바로 산업용 VR/AR이라서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AR 글래스는 원격 협업 환경에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발휘합니다. 페라리 미국 지사는 예전부터 차량 수리에 이 안경을 도입해서 쓰고 있었는데요. 도로에 굴러다니는 다양한 자동차 수리 방법을 한 명이 다 알기 어려우므로, 차량 수리 시 AR 안경을 쓰고 본사 전문가와 협업해 수리한다고 합니다. 올해 초 코로나19 파동이 왔던 시기, 한화토털에서 정기보수 작업을 위해 이용한 기술도 스마트 글래스이고, 미국 인텔에선 유럽에 있는 전문가와 원격 협업해, 반도체 생산공정 조정을 무사히 끝마치기도 했습니다.

원격 회의와 원격 협업처럼 서로의 간격을 줄여주는 기술로 많이 쓰이지만, 실제 생산이나 교육용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면 실 제품을 만들기 전에 실제 크기로 직접 돌려보면서 얘기하고 확인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시제품 제작 비용 및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업무 교육용으로도 많이 쓰이는데요. 운전이나 작업 공정, 재난 등 실제 상황을 가정하면서 몸을 움직여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시뮬레이터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세일즈 부서에서 대면 교육을 대신해 가상으로 판매 훈련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어느 날 토끼를 따라가다 이상한 나라에 폭 빠져, 순식간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처럼, 우리도 코로나19란 토끼를 만나 쫓기다 보니, 옛날에 상상만 했던 세계로 푹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겁니다.

만들어지고 있는 뉴노멀

  1. 3현실의 사물을 AR 콘텐츠로 만들어주는 ‘ClipDrop’ 앱 © clipdrop.co

핵심은 스마트폰이나 PC와 달리, VR 기술을 이용하면 디지털 정보를 직접 보여줄 수 있다는 겁니다. 작업자가 작업을 할 때 매뉴얼을 일일이 참고할 필요 없이, 관련 정보나 점검해야 할 부분이 그냥 눈앞에 보입니다. 주문에 맞게 다품종을 소량 생산할 경우, 필요한 기재 등을 AR 글래스에서 직접 챙겨줄 수 있습니다. 가상의 물건으로 미리 만들어내 검토할 수도 있고, 가상의 상황을 실감 나게 제시해 몸이 반응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현실로 끄집어내기엔 많이 복잡한 일이지만, 가상 공간에선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고 바꾸고 확장할 수 있으니까요. 서로 떨어져서 일을 할 수 있는, 아니 떨어져 일해야 하는 세상에서, 이런 특징은 축복입니다.

이쯤에서 하나 고백하자면, 내일이라도 당장 VR 미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썼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VR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콘텐츠인데요. VR 관련 콘텐츠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은 쓰면 되고, 그림은 그리면 되고, 소리는 만들거나 녹음하고, 사진이나 영상은 찍고 편집하면 되지만, VR 콘텐츠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3D 기술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 손대기 쉽지 않죠. 아직 많은 VR 콘텐츠가 VR 카메라로 찍은 360도 영상에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유튜브와 마인크래프트로 디지털 세계에 입문한 사람들이 이제 어른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3D 그래픽은 레고 블록 놀이와 다르지 않죠. 어도비에선 3D 그래픽 재료를 조립하면 바로 AR 콘텐츠가 되는 앱을 선보였고, AR Cut & Paste 라는, 현실에서 사물을 복제해 AR 콘텐츠로 만드는 앱도 나왔습니다. 아직은 기술 특성에 맞춰 산업용으로 더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런 변화가 계속된다면, 앞으론 과연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요? 진짜 뉴노멀은, 바로 그런 시대를 가리키는 것일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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